1. 중국이 짧은 시간에 강대국으로 일어 설 수 있었던 것은 덩샤오핑이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을 세운 것은 마오 지킨 것은 저우였다. 세사람 모두 자기의 재산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존경을 받을 수 있었고 마오도 과오는 있었지만 공과를 7:3으로 평가받아 더 이상의 논쟁을 없앴다.
2. 중국을 알려면 마오 저우 덩 세사람을 공부하면 저절로 알게 된다. 천안문사태를 진압하지 않을 수 없었던 배경이 곧 중국이 일어설 수 있는 환경마련이었다. 덩은 말한다. 중국이 미국과 같은 민주주의를 하면 1년 365일 내내 시위가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그러면 뒤처진 중국이 언제 일어 설 수 있겠느냐고.
3. 덩의 흑묘백묘론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본주의에서 좋은 제도를 가져오고 사회주의에서 좋은 점을 보완하여 중국이 빠른시일에 일어서고 인민이 잘 살 수 있는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구축한 것이다. “개혁.개방”이 덩이 내세운 경제발전의 슬로건이고 시범적으로 심천 등 4곳을 지정하여 성공한 것이다.
4. 덩은 중국의 안정을 강조하여 후계자도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지도력을 발휘한 사람으로 적극 밀어주었다. 강택민과 후진타오. 그는 이들이 끝까지 힘을 가지고 일 할 수 있도록 원로급들을 물러나게 자진후퇴하고 개혁개방을 게을리 할 때 남순강화를 통하여 다시한번 강하게 경제개발을 강조하였다. 이것이 그의 중국사랑이고 헌신이었다.
5. 암투병 중 여생이 얼마 남아있지 않은 저우언라이가 마오에게 말했다. 우리 두사람이 먼저 죽으면 중국을 책임질 사람이 누구인가. “4인방인가”, “덩인가”, 마오도 4인방은 아닌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덩을 다시 살린 것이다. 그래서 덩은 말한다. “저우는 내평생 가장 가까운 兄”이었다고. 그리고 저우의 임종전에 “변하지 않을 것”임을 약속하였다.
6. 등샤오핑의 인생은 삼락삼기(三落三起)였다. 무엇이 그를 역사의 승리자로 만들었는가. 그는 대답한다.
“樂觀”과 “忍耐”였다고. 그리고 그는 그의 인생에 부끄러움이 없다고 말한다. "과오도 좋은마음으로 시작한 것"이니까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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