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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자연/음악-Music

Paul Mauriat의 Isadora

by mo516 2007. 6. 14.

희한한 자동차 사고로 그녀의 인생이 비극적으로 끝나기 14년 전

이사도라 던컨은 그녀의 두아이, 다섯 살짜리 데어더와 세 살짜리 패트릭을 잃었는데,

그것 역시 자동차 사고 때문이었다. 아이들은 센 강에 굴러 떨어진 승용차 안에 갇혀 익사했다.

던컨은 목에 두번 감아 두른 자기 숄이 스포츠카 바퀴에 걸려 감기면서 목이 매달려 죽는다.

죽기 전날 이사도라는 죽은 딸 데어더를 생각나게 하는 여자아이를 보았으며 친구에게 이렇게 털어놓았다.

"파란 눈의 금발 머리 예쁜 어린애들이 있는 세상에서는 더 이상 살 수가 없어. 못 살겠어!"



1878년9월 14일,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난 던컨은 젊은 시절 자기를 오디션하는 연극 연출자에게

"2000년 동안 잃어버렸던 예술을 발견했어요.

우리 시대를 완전히 변혁시킬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갖고 왔어요."라고 말해 그를 놀라게하였다.

던컨은 발레의 딱딱한 형식주의를 탈피하고 감정과 자연스러움,

그리고 몸짓과 목소리의 일치를 주장한 프랑수아 델사르트의 미용 체조 시스템을 토대로 자신의 무용을 발전시켰다

1904년 12월,

스물여섯 살 때 그녀는 연극 디자이너 고든 크레이그와 열애에 빠졌으며 그 결과 딸 데어더를 낳았다.

그 뒤 1906년에는재봉틀왕 이삭 싱어의 스물세 자녀 가운데 하나인 패리스 싱어의 정부가 되었다.
이 바람둥이 백만장자는 그녀에게 7년 동안의 사치스러운 생활과 그녀의 두번 째 사생아인 패트릭을 선사했다.

예술을 제외한다면 이 두아이들이 그녀 인생의 중심이었다.

첫번째 자동차 사고가 일어난 것은 1913년으로 파리에 살고 있을 때였다.

아이들과 점심을 먹고 던컨은 리허설 홀로 돌아왔다.

아이들은 세낸 승용차에 태워 집으로 돌려 보냈는데,

도중에 센 강을 굽어보는 제방에서 자동차 엔진이 꺼졌다.

크랭크를 돌려 시동을 걸려고 차에서 내린 운전사는 끔찍하게도 기어를 후진에 놓아둔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굴러가는 자동차를 멈추려고 했으나 차는 둑 쪽으로 후진하여 굴러 떨어졌으며 그곳은 유난히 수심이 깊었다.

경찰이 자동차를 찾아내 끌어올리자 데어더와 패트릭은 죽어 있었다.

이 무용가에게는 더 많은 비극이 기다리고 있었다.

1922년, 세계적으로 유명해져 있던 마흔 네살의 던컨은 평소의 결혼 혐오감을 접어 두고

열일곱 살 연하인 러시아 혁명의 계관 시인 세르게이 에세닌과 결혼한다.

그들의 결혼은 짧고 불행했다.

반쯤 미친 알콜 중독자였던 에세닌은 1925년의 마지막날 끔찍한 자살을 했다.

그의 인생과 결혼처럼 그의 죽음도 그답게 난폭하고 극적이었다.

그는 호텔 방에서 원고를 불사른 뒤펜으로자신의 피를 찍어 작별의 시를 써놓고 목을 맸다.

충격을 받은 던컨은 자신도 목숨을 끊을까 생각했다.

그녀는 친구에게 쓴 편지에서"나는 너무나도 불행해.

나는 종종 그이의 본보기를 따를걸 생각해 보는데 방식은 다르게 했으면 좋겠어.

나는 바다가 더 좋아."라고 적었다.

그녀가 이 편지를 쓴 것은 죽기 2년 전으로,

사실상 프랑스의 니스에서 무일푼으로 살고 있을 때였다.

그녀는 절박하게 돈이 필요했다.

밀린 숙박 요금 때문에 호텔에서 쫓겨나기 일보 직전이었던 던컨은

미국의 한 출판사와 자서전 집필을 계약하고 얼마 안 되는 금액을 선불로 받았다.

던컨은 자신의 예술에 대해 쓰고 싶었던 반면 맨해튼의 출판업자는

그녀의 화려한 남자관계에 좀더 관심이 있었다.

그녀가 니스에서 쓴 글의 일부를 보내자 뉴욕에서 전보가 왔다.

" 호언장담성 아이디어는 그만하면 충분합니다. 사랑에 관한 장(章)을 보내 주세요. 좀 진지하게 써 줘요."

던컨은 계속하여예술에 대한 글을 썼다.

대여섯 장이 끝나가는데도 자기의 연애나 정사 이야기는 단 한마디도 쓰지 않았으며

빈정거리듯 친구에게 농담을 던졌다."2만 단어를썼는데, 난 아직도 처녀야."



joan lavery/ The dancer

결코 푼돈을 아끼는 성격이 아니었던 던컨은

자동차 판매점 쇼룸에 전시된빨간 부가티를 보고 감탄했으며 구입을 고려했다.

늘 스포츠카를 좋아하던 그녀는 거의 매일 그 이탈리아제 경주용 자동차 앞을 지나다녔던 것이다.

1927년 9월 13일 화요일, 그녀는 쇼룸에 들어가 시험 주행을 해 볼 수 있느냐고 물었다.

전시 판매점 주인 베노이트 팰체토는 유명한 무용가 던컨을 맞이하여

자기가 직접 그녀를 방문하여 시험 주행을 해주겠다고 대답했다.

죽은 딸 데어더를 생각나게 하는 예쁜 여자아이를던컨이 보게 된 것은 바로 그날 집으로 걸어가던 도중이었다.

이튿날 저녁 젊은 미남 펠체토는 그녀의 호텔 앞에 스포츠카를 댔다.

그날 밤은 날씨가 싸늘했기 때문에 던컨은 추위로 몸을 떨었다.

친구 메리 데스티가 자기 망토를 입고 가라고 하자 던컨은 거절했다.

이번에는 펠체토가 자기 가죽 재킷을 입으라고 권했으나 던컨은 마다하고

빨간 실크로 만든 장식용 술이 달린 숄을 목에 두 번 감아둘렀다.

차에 오를 때 그녀는 손을 흔들며 "친구들, 안녕 나, 좋은 데 간다!"고 말했다.

펠체토가 차를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 숄의 한쪽 끝이 땅에 끌렸다.

데스티는 던컨에게 숄을 잡아당기라고 소리쳤다.

그 순간 숄의 장식용 술이뒷바퀴에 걸렸다.

차가 가속하자 숄은 마치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이 홱 잡아당기듯

덩컨의 목을 낚아채며 부러뜨렸다.

그녀의 머리가 차 문에 부딪히면서 코가 부러졌다.

던컨은 죽어 있었다.

펠체토는 브레이크를 콱 밟았고 던컨의 친구들은 자동차로 뛰어갔으나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아직 확실히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곧 펠체토는 미친 듯이 이탈리아어로 소리쳤다.

"성모 마리아여! 내가 그녀를 죽였습니다."

숄은 덩컨의 목과 자동차 바퀴에 너무 단단하게 감겨 풀리지 않아 잘라 내야만 했다.

9월 19일,

던컨의 영구차는 그녀의 자줏빛 망토로 덮은 관을 싣고

이슬비가 내리를 꾸불꾸불한 파리의 골목길을 엄숙하 통과해 나갔다.

장례 행렬은 원래 샹젤리제로 나갈 예정이었으나,

이 유명한 거리는 그날 미국 재향 군인회의 행렬이 차지했다.

페르 라셰즈 화장터에는 수천 명의 팬들이 모였다.

간단한 의식과 함게 그녀의 유해는 그녀의 두 아이

데어더와 패트릭 곁에 묻혔다.

찰스 패너티,<그것은 이렇게 끝났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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